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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진검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다. 중학 때 처음 검도를 시작하여, 5단이었던 때였으니 약 15년 정도 검도를 한 시기였었다. 어느날 도장에서 우연히 낡은 비디오테이프를 접하게 되었다.
오래되고 여러 사람의 손을 타서인지 화질도 좋지 않은 테이프였는데, 처음 그 테이프를 보는 그 순간의 기억을 지금도 나는 지울 수가 없다. 마치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고, 가슴에 왠지 모를 비애가 한순간에 몰려왔다. 우선 나이 지긋한 연무자의 기위(氣位)에 놀랐고, 흐트러짐 없는 그 자세나 표정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가슴 한쪽에선 5단이 될 동안 검도를 하면서 무엇을 하였나하는, 극단적이긴 하지만, 허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한때 선수로서의 꿈을 가져보기도 하고, 여러 시합에 나가 우승도 했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승단 심사 때, 한두 번 진검을 만져본 것이 전부였었다. 당시엔 칼도 귀하기도 했었고, 특별히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지는 않았지만, 어찌되었던 당시 나는 拔刀, 納刀도 못하는 검도 5단의 사범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 테이프를 본 후, 나는 진검 사용의 멋스러움에 매료되었고, 그 동안 내가 알지 못하던 분야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도전하고 싶은 묘한 충동을 느끼면서, 진검을 배울 결심을 하였다. 낡은 테이프를 수백 수천 번 반복해서 보았고, 어렵게 책을 구해서 단어를 찾아가며 공부를 하였다. 어렴풋이 감이 조금 온다 싶어서 신문도 오려 베어보고, 나무젖가락이나 짚단, 대나무 등을 놓고 직접 베기를 해보았으나,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자세는 그렇다 치더라도 15년 동안 검도를 해왔는데, 힘으로라도 베어져야 할텐데, 신문지는 찢어지고, 나무젖가락은 부러지고, 짚단은 박히고,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칼을 잘 한다고 하면 검도인이고 아니고를 불문하고 물어보고 배우려고 했었다. 당시 나를 아껴주던 주위의 분들 중에는 걱정어린 충고를 해주는 분들도 있었는데, 명색이 검도 5단 사범이 검도도 하지 않은 이들에게 그러면 남들이 뭐라고 하겠냐는 말이었다. 걱정해주는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명색이 검도 5단이 나무젖가락 하나 제대로 못 벤다는 것이 더 부끄러웠고, 검도를 십 수년간 해왔지만 무언가 나에게 근본적인 문제가 있지 않은가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다행히 칼날의 각도나 칼의 길 등이 이해가 되면서 베기가 급진전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검도를 해오면서, 나도 모르게 베어있는 스탭이나 중심이동 같은 몸놀림과 몸의 감각이 많은 도움을 주었고, 그 동안 해온 검도가 헛되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나름대로 진검 사용이 손에 익고, 베기의 여러 기술적인 부분이 어느 정도 되어간다고 느끼는 시점에서, 다시 한가지 회의감이 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죽도대련과 베기의 이질감이었는데, 죽도 대련 시, 중요한 것은 상대성으로, 움직이는 상대와의 거리와 타이밍을 들 수 있는데, 흔히들 베기를 할 때, 칼을 뽑아 물체에 근거리까지 접근하여, 편한 호흡에 베기를 하기 때문에, 죽은 물체를 단지 기능적으로 베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오랜 고민 끝에, 칼을 뽑아서 베는 동작까지의 틈을 두지 않는, 연결과 흐름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눈에 보이는 상대의 움직임에 따른 거리와 타이밍 외에 상대의 氣를 제압하는 氣位나 存心과 같은 내면적인 중요성을 실감하게 되었다.
결국 검도에 있어서 죽도 대련과 진검 수련을 병행해야 하는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고, 그 시점은 내가 처음 칼을 배우려했던 멋스러움에서 해방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요즘의 진검 수련에 있어서의 나의 고민은 우리의 칼, 우리에게 맞는 몸놀림이다. 훌륭한 선조들의 칼의 문화가 계승 발전되지 못 한 아쉬움이 있지만, 조선세법이나 본국검법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 젊은 검도인으로서 약간의 사명감도 느끼는 입장이다. 그러나 섣불리 부족한 실력으로 우리의 것을 논하기에 앞서, 우선은 일본의 것을 따라 가지 않을 수 없음도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궁극에 가서는, 우리의 몸짓이 우리의 정서에 가장 잘 맞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느 시기가 되면 결국 우리의 것을 찾아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배움에 있어 거만하여서는 안되고, 남의 것이라 해보지 않고, 터부 시 하기보다는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깨우쳐나가며, 나의 것으로 만드는 守破理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1999. 11 연사 6단 성진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