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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일본의 대무도 전집에 일본도의 효시는 신라검이라고 나오고 있고, 과거의 우리나라의 도검이 매우 좋았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는 많이 있지만, 사실 명검이라고 할 만한 검이 남아있는 것은 별로 없는 실정이니 이 말을 증명할 수 가 없으니 안타깝다. 무예도 보통지에도 일본의 칼이 날카롭다는 이야기가 있고, 일본의 칼이 좋아서 수입했다는 이야기만 적혀있다.
일본도를 분석해 본 도검업자들의 말을 들어도, 일본도 수준을 지금도 한국에서는 도저히 재현 할 수 없다고 한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볼때 무를 천시했고 문을 숭상했다. 사농공상의 계급제도가 철저해서 기술을 가진 장인이 우대받는 사회가 아니었다. 세계 최고의 자랑할만한 고려 청자나 이조 백자가 지금 현대의 한국에 전수 되지않고 있고 몇몇 뜻있는 이들이 재현할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장인들이 조선 사회에서 어떤 계급이었는가? 대장장이의 계급이 가죽신을 만드는 가파치와 다른 계급이었을까? 이런 사회에서는 명품이 나올수 없고, 이런 전통이 현대의 한국에서도 큰 차이가 없는듯 싶다.
한국의 도검이 발전하게 된 시기는 80년대 중반부터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 싶다. 그전에는 영세한 업체가 있었고 어쩌면 이분들의 장인정신이 한국 도검 역사의 시발점이 되는것같다. 그때부터 확장된 해동검도의 발전이 우리 도검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도검시장의 확대에 힘입어 여러가지 전통도검이 재현되었다. 아직 한국도검은 개량의 여지가 많지만 지난10여년동안 많은 발전을 해왔다고 자위해본다.( 더많은 자료가 있으신분은 연락 주시면 많은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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